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커트 코베인 (문단 편집) ===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 === [[https://nirvana.fandom.com/wiki/Kurt_Cobain%27s_Top_50_Albums|커트 코베인이 좋아하는 TOP 50 앨범]] [[오아시스(밴드)|오아시스]]나 [[라디오헤드]]와 같은 여느 1990년대 록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커트 코베인 역시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을 좋아했고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음악적 성향은 두말할 것도 없는 [[펑크 록]], [[얼터너티브 록]], [[그런지]]이지만, 달달한 메인스트림 팝 곡도 아주 좋아하여 [[ABBA]]나 [[베이 시티 롤러스]], [[몽키즈]]같은 팝 밴드도 자주 들었다.[* 전미 투어 도중 투어 버스 안에서 당시 갓 발매된 아바의 Gold: Greatest Hits 음반을 내내 돌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비틀즈]]와 [[존 레논]]도 아주 좋아해서 생전에 비틀즈의 화이트 앨범을 세계 최고의 앨범이라고 극찬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비틀즈의 중~후기 명반들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닌 초창기 로큰롤 시기의 비틀즈 음반들도 엄청나게 좋아했다. 외에 [[낵]], [[칩 트릭]] 등의 [[파워 팝]] 밴드들과 [[매지 스타]], [[비트 해프닝]], 바셀린즈 같은 [[인디 팝]], [[드림 팝]] 밴드도 즐겨 들었다. 그의 이렇게 멜로딕하고 팝적인 음악에 대한 애정은 그의 강렬하면서도 한편으론 멜로디감이 살아 숨쉬는 그의 작곡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이렇게 은근히 뛰어난 멜로디 작곡 능력 때문에 당시 대중들에게 생소했던 얼터너티브 록 음악으로도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 당시 시애틀의 [[그런지]] 신 아티스트들과도 막역한 사이를 유지했으며 무명 시절 동료 밴드의 녹음이나 공연에 참가한다던가 서로 홍보를 도와준다던가 하는 일이 잦았다. 대표적으로 [[멜빈스]]의 앨범 "Houdini"는 커트 코베인이 손수 프로듀싱했으며, [[스크리밍 트리스]]와 그 보컬 [[마크 레너건]]의 음반에 기타와 코러스로 참여했고, [[코트니 러브]]의 밴드 [[홀]]의 2집 녹음에도 어느 정도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초기 그런지 씬 아티스트들은 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라 이렇게 상부상조하는 일이 잦았다. 당시 대중음악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던 [[힙합 음악|힙합]]에도 상당히 관심이 있었으며 [[퍼블릭 에너미]]의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은 커트가 좋아하는 음반 중 하나였고, 힙합을 새로운 시대의 음악이라 평하며 흥미를 보였다. 그러나 여러 힙합 가사의 [[여성혐오]], [[동성애 혐오]]적 표현에 대해서는 상당히 불쾌하게 여겼다. 그가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장르는 [[펑크 록]]이며 전설적인 펑크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1집 이름에서 히트 앨범인 [[Nevermind]]의 제목을 따 붙였다고 한다. 정작 [[존 라이든]]은 그 답게도 커트 코베인 같은 허접한 아티스트가 자기 1집 이름을 따 앨범 명을 지은건 역겨운 일이라며 커트 코베인을 무진장 깠다. 존 라이든은 너바나보다는 건스앤로지스가 훨씬 나은 밴드라고까지 했었다. 다만 존 라이든은 누군가를 깔 때 노이즈 마케팅 언플과 자신의 비주류적인 반골 이미지의 일관성을 위해 무작정 까는 경우가 워낙 많고, 그에게 안 까인 뮤지션이 거의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그의 험담에는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게다가 커트 코베인이 죽은 이후에 존 라이든은 [[존 레논]]이나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와 마찬가지로 커트 코베인의 업적을 어느정도 인정하긴 했다. 커트는 [[더 섀그스]]라는 프로토 펑크 밴드의 유일한 앨범 "Philosophy of the World"를 좋아하는 앨범 5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 밴드의 문서를 읽으면 알겠지만 더 섀그스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아방가르드 음악]]쪽으로 분류될 정도의 엉망인 실력을 가진 밴드다. 물론 이런 점은 다른 방향으로 유명해져 [[더 클래시]], [[프랭크 자파]] 등 여러 펑크/전위 예술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말이다.] 커트는 [[와이퍼즈]], [[블랙 플래그]], [[스투지스]], [[배드 브레인스]], [[갱 오브 포]], [[버즈콕스]] 등 여럿 펑크 록 밴드들을 거의 숭배하다시피 했으며 너바나 역시 근본적으로는 펑크 밴드였다. 또한 헤비 메탈 팬들에게는 거의 죽일 놈 취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드 록 성향의 음악가답게 여러 메탈 밴드들의 팬이기도 했다. 1집 제작 당시에는 [[켈틱 프로스트]]의 음반을 귀에 달고 살았으며, [[슬레이어(밴드)|슬레이어]] 역시 그의 페이브릿 메탈 밴드였다. 특히나 커트 코베인은 [[메탈리카]]의 광팬이었다고 한다. 어떤 날은 메탈리카의 공연에 찾아가서 그 떡진 금발을 휘날리며 [[헤드뱅잉]]을 하면서 미쳐 날뛰고 있었는데, 그걸 알아본 [[커크 해밋]]이 팬 서비스 차원에서 커트가 가장 좋아하는 메탈리카의 곡인 'Whiplash'를 연주해 주었다고 한다.(커크 해밋 인터뷰 중) 사실 너바나가 갑자기 팍 뜬 이유가 [[팝 메탈]]의 야들야들한 미들이 강한 기타톤에 질린 락키드들이 코베인의 하이게인 디스토션 기타 톤에 열광함에 있었음을 생각한다면, 스래시 메탈 밴드인 메탈리카가 너바나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이 사실이다.[* 사실 메탈리카도 결성 당시 유행하던 팝 메탈과는 다른, 주로 [[모터헤드]]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스래시 스타일의 노선을 타기로 결심하여 결성되었던 것이라 너바나를 필두로 한 그런지 및 얼터너티브 씬의 아티스트들과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음악적 이상향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90년대 당시 우리나라 매체를 보면 [[너바나]]를 [[헤비메탈]] 밴드라고 잘못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런 사운드로 인해 문외한에게는 헤비메탈과 상당히 유사하게 들렸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어렸을 적에 [[레드 제플린]], [[AC/DC(밴드)|AC/DC]], [[에어로스미스]] 등의 고전 하드록/헤비메탈 밴드들도 좋아했다고 한다. 역사적인 너바나의 초연에서 레드 제플린의 곡인 [[Heartbreaker(레드 제플린)|Heartbreaker]]를 커버하기도 하고, [[Immigrant Song]] 등 레드 제플린의 곡을 가지고 기타랑 보컬을 연습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레드 제플린과 에어로스미스를 어린 시절때만큼 좋아하지는 않아서, 큰 이후에는 어릴때 모았던 레드 제플린과 에어로스미스의 앨범들을 단돈 12달러[* 현재의 한국 돈으로 약 1만 3천원 정도. 물론 당시인 1980년대 후반의 기준으론 훨씬 더 된다.]에 모두 팔아버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코베인은 [[페미니스트]]답게 "예전에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레드 제플린이나 에어로스미스 같은 헤비메탈 밴드들의 가사들은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이라 환멸을 느꼈다"라고 소회했다. 헤비 메탈 씬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펑크 록에 더욱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도 이들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심은 유지했으며 유럽 투어 당시 어린 시절 자신의 영웅이었던 [[에디 밴 헤일런]]이 [[술]]과 [[마약]]에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백 스테이지에 난입, 온갖 깽판을 벌이고 [[팻 스미어]]에게 [[인종차별]]적인 욕설을 내뱉는 등의 추태를 보이자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인디 음악과도 큰 연관이 있었다. 너바나가 [[픽시즈]]에게 받은 영향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커트는 [[머드허니]], [[브리더스]], [[소닉 유스]], [[R.E.M.]], [[화이트 좀비]] 등 당대 미국 인디 록 신의 열성적인 지지자였으며 이들과 사적으로도 친분을 쌓았다. 꽤나 마니악한 면모도 있어서 [[다니엘 존스턴]]이나 [[버트홀 서퍼즈]], [[하프 재패니즈]], [[스완스]] 같은 극도로 마이너한 음악가들의 열성 팬이었으며 당시 미국은 커녕 본국 [[일본]]에서도 마이너하기 짝이 없었던 일본 언더그라운드 밴드 [[쇼넨 나이프]]와 [[보어덤즈]]를 용케도 찾아내 광적으로 빠져들었다던가[* 너바나가 성공한 이후 커트는 이들을 직접 미국에 초청해서 오프닝 밴드로 세웠으며 [[보어덤즈]]의 경우 아예 객원 멤버로 참여하려 하기도 했다.], 60년대 말에 활동한 네덜란드의 로큰롤 밴드 더 아웃사이더즈와 그룹의 리더 왈리 택스(Wally Tax)를 존경하여 네덜란드 공연 시에 시간을 내어 그를 찾아가 대화를 나눴다던가 [[Incesticide]]의 라이너 노트에서 뜬금없이 [[런던]]에서 [[포스트 펑크]] 밴드 [[레인코츠]]의 앨범을 구하러 발품을 판 썰을 주욱 늘어놓는다던가[* 이 인연으로 커트는 레인코츠 음반의 재발매 당시 라이너 노트를 쓰게 된다.] 하는 일화가 많다. 사실 당시 [[헤비메탈]] 같은 주류 장르에 속하지 않던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은 거의 다 이렇게 [[힙스터]]적인 음악 취향을 가진 괴짜들이었다. 그리고 당시 미국에서는 비교적 인기가 적었던 [[조이 디비전]]이나 [[더 스미스]]와 같은 영국 밴드들 역시 그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커트는 단순히 이런 마이너 음악가를 좋아하기만 하지 않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대중들에게 소개시키려 노력했으며 덕택에 그를 은인으로 여기는 인디 뮤지션들도 많다. 이 외에, 커트가 좋아한다고 언급을 한 적은 없지만, [[퀸(밴드)]]의 [[프레디 머큐리]]를 특히 공연 퍼포머로서 상당히 존경하고 부러워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커트의 유서에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자기는 많은 관중이 들어서는 대규모 공연 무대에 공포감과 거부감이 있다면서 많은 청중들 앞에서 마음껏 즐길줄 아는 프레디 머큐리가 부럽다며 프레디 머큐리를 유능한 무대 퍼포머의 대표격으로 딱 집어서 언급을 했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